서태후라고 한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TV나 역사 시간에 중국의 악녀로 언급되는 인물인데요.
이번에는 서태후에 대해 간략히 소개합니다.
1. 출생
1835년에 태어나 1908년까지 살았습니다.
72세로 상당히 장수한 편.
황후로 즉위한 것은 청나라 시절인 1861년부터 1908년까지입니다.
총 47년
2. 서태우의 악행
한끼에 지금돈 8천만원에 해당하는 식사
왠만한 사치는 서태후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미식가라 음식에 대한 욕심도 많았는데 매 식사때 128가지나 되는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농민 천명이 먹을 수 있는 금액을 한끼 식사에 쓴 것.
지금으로 비유하면 8천원 짜리 식사 1000분, 8천만원의 식사를 한끼에 쓴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음식을 3번이상 먹지 않았습니다.
요리사는 약 100명이 달라붙었다고 하네요.
옷은 3,000천 상자 분량
3,000벌이 아닙니다. 3,000 상자에 대한 분량입니다.
하루에 몇번씩 옷을 갈아입었고 보석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습니다.
민주, 비취로 전신을 꾸몄고 비취는 너무 좋아해 식탁을 비취로 만들었습니다.
신발은 한번 신은 신발은 절대 두번다시 신지 않았구요.
서태후의 신발을 만드는데만 약 3천명이 동원되었습니다.
이화원에 은전 3000만양을 쓰다
서태후가 저지른 악행 혹은 판단 미스로 시행한 일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이화원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는 것입니다.
이화원은 중국 베이징 근교에 있는 황실원림인데요.
총면적이 2.9km2에 달합니다.
이것을 짓으나 은전 3000만양을 썼는데 이는 당시 청나라 1년 예산에 30%에 달아하는 막대한 금액이었습니다.
이 재정은 대부분 청나라 해군 예산 써야할 돈을 유용한 것으로 예측되는데요.
이후 청일 전챙에서 일본에 깨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의화단 활동을 지지 혹은 방관한 죄
서태후가 의화단을 정말 지지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방관한 것은 분명한데요.
의화단은 청나라 말기 종교인 백련교와 합쳐서 일어난 봉기집단입니다.
원래는 이화권이라는 무술을 수련하는 집단이었는데요.
외세를 물리친다는 명분으로 발란을 일으킵니다.
무술과 종교적 색채가 강한 집단이었는데요.
의화단은 수도인 북경에 쳐들어와 엄청난 학살과 파괴행위를 저지릅니다.
서태후는 의화단를 옹호합니다. ㅡ,.ㅡ;
그리고 독일 공사가 의화단의 습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연합군은 무려 5만명을 청나라에 파견!
서태후는 도망하고 신축조약이 맺어집니다.
청나라가 물어야할 배상금은 4억 5천만량 + 외국 군대의 북경 주둔을 허용
결국 서태후가 의화단을 적극 진압했으면 청나라가 이렇게까지 무너질리는 없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서태후의 죽음
서태추는 정적이 없었습니다.
유일한 적은 사치였는데요.
자기 생일 잔치에서 며칠동안 과식한 서태우는 이질에 걸립니다.
그리고 1908년 11월 15일 죽었는데요.
유언은 '다시는 나처럼 여자가 정사에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라'
여자가 정사에 나설 틈도 없이 4년 후 청나라는 망합니다.